* 도서 소개 및 이미지 출처 : www.yes24.com
[도서명]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저 자] : 김영갑
[출판사] : 휴먼앤북스(Human&Books)
[가 격] : 13,500
[출판일] : 2007년 5월
[현상태] : 판매중
[기 타] : 페이지 253 / 679g / A5신변형
책소개
2004년 출간되었던 『그 섬에 내가 있었네』의 양장본. 루게릭 병으로 8년간 투병하면서도 작품에 몰두했던 故 김영갑 작가의 2주년을 추모하는 사진 에세이집이다. 1985년 제주도에 내려와 사진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 섬에서 울고 웃으며 온몸으로 헤쳐 온 지난 20여 년간의 이야기를 한데 묶었다. 1부에서는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무엇에 홀린 듯 섬에 스며들어 뿌리내리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온 생애를 지배하는 사진, 그리고 그를 사로잡아버린 섬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2부에서는 예고 없이 찾아온 병마와 힘겹게 싸우며 절망의 끝에서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가가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절망적인 상황을 넘어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삶의 진정성이 배어 있는 글이 읽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또 눈물겹게 적시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사진 주제인 \'외로움과 평화\'가 가장 잘 표현된 사진 70여 컷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 : 김영갑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부터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 ‘그 섬에 영원히 있다.’
그가 \"두모악 편지\"에 남긴 글은 그가 스무해를 두고 떠나지 않았던 제주, 그리고 사진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담고 있다.
\"내게 있어 제주는, 제주의 사진은,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인간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사람들은 그 제주를 두고 천혜의 관광지라거나, 혹은 세계 제일의 청청지역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의 제주일 뿐입니다. 칠색 띠로 치장하고도 바다는 여전히 겸손합니다. 그 바다에는 수천년을 이어온 제주인 특유의 끝질긴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오름에 올라,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들풀이나 야생화 따위를 보며 느끼는 순응의 미학은 오로지 제주만의 것입니다. 돌서덕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에서 그들은, 죽음이나 절망 따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건져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입니다. 그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을 수 없는 제주만의 은은한 황홀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그 삽시간의 환상을 잡고 싶었습니다. 20여 년 세월을 미친 듯이 쏘다니며 안간힘을 쓴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일상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이거다 싶을 때마다 그 황홀함을 붙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흐름 속에 마주해야 하는 기쁨이나 혹은 외로움 허무 따위 절망적인 감상까지 씻어줄 것 같은 황홀함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끝이 나고 맙니다. 단 한번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저 삶을 평화롭게 응시할 것을 주문합니다. 나는, 제주의 가공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대로의 그것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그저 기다릴 뿐 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해 존재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입니다.\" (출처: http://www.dumoak.co.kr)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부터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 ‘그 섬에 영원히 있다.’
그가 \"두모악 편지\"에 남긴 글은 그가 스무해를 두고 떠나지 않았던 제주, 그리고 사진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담고 있다.
\"내게 있어 제주는, 제주의 사진은,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인간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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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보잘것없는 곳에 숨겨두신 희망 / 황대권
시작을 위한 이야기
1부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세상에서 제일 뱃속 편한 놈
그 여름의 물난리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
고향이 어디꽈? 빈 방이 없수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지키지 않아도 좋은 약속
나는 바람을 안고 초원을 떠돈다
오름에서 느끼는 오르가슴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한라산 기슭의 노루가 되다
어머니의 쌈지
상처투성이 아버지의 죽음
결혼도 못하는 소나이놈
영개바, 나이 들엉 어떵허려고
나의 전속 모델
뭍의 것들, 육지 것들
믿을 수 없는 일기예보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떠나보내는 심정
다시 마라도
내 삶의 길라잡이
2부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동백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
혼자 부르던 노래마저 그치니
어둠 속에서 길을 잃다
몰입의 황홀함
유효 기간
기다림은 나의 삶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 초대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다
폭풍우 속에서도 태양은 떠오른다
한겨울에 숨어 있는 봄
이어도를 훔쳐본 작가 / 안성수
• 출판사 리뷰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나이 47세. 이름 김영갑. 충남 부여가 고향. 지금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 살고 있습니다. 보통 그 나이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아이들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거나 직장에서의 명예퇴직을 걱정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이 남자는 전혀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지금은 이 남자를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남자는 제주도를 오가는 바람을 만지며, 떠오르는 해와 지새는 달을 보며, 억새처럼 휘청거리며 그저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남자는 사진작가입니다. 아니 이제 사진 작가였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카메라 셔터를 누를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사진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는 20여 년 전에 카메라 하나를 달랑 메고 제주도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제주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의 사람과 자연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달도 찍고 별도 찍고 바다도 찍고 산도 찍었습니다. 그가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입니다.
필름이 떨어지면 막노동을 해서 필름을 샀습니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필름이 떨어지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해안 마을에서도 중산간 마을에서도 마라도에서도 몇 년간 살았습니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주도의 빛과 바람을 그는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이 남자는 이제 밥도 먹지 못합니다. 죽과 같은 유동식으로 천천히 식사를 해야만 합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말도 힘들여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라고도 하는 루게릭 병 때문입니다. 이 병은 정확한 발병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불치의 병입니다. 확증이 되면 대개 5년을 넘기기 힘들다지요. 한때 75kg이던 그의 건장한 육체는 이제 43kg으로 볼품없이 줄어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이제 그의 사진을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사진 갤러리가 있고, 그가 몸으로 마음으로 찍은 20여만 장의 필름이 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뿐입니다. 그의 사진 갤러리는 폐교된 삼달초등학교를 5년간 임대하여 그가 구상해서 꾸민 공간으로, 2002년 7월 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한라산의 옛 이름에서 따와 ‘두모악’이라 하지요. 최근에는 관광객이나 입소문으로 전해들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제주도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몸은 병들었지만 이 남자는 오히려 평화를 찾았습니다. 미친 듯한 열정으로 찍어대던 사진도 더 이상 찍지 못하고, 중산간을 오르내리던 튼튼한 다리도 말을 듣지 않지만, 그래서 돌볼 말 한 마리 없는 제주도의 마지막 테우리(목동) 같은 신세가 되었지만, 이 남자의 가슴에는 회한과 미련보다는, 슬픔과 애착보다는, 마음속의 화해와 고즈넉한 일몰의 평화가 있습니다. 그는 생명이 역동하는 대자연 속에서 20여 년에 이르는 사진 작업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시기하고 다툴 뿐이지,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는 우리의 바쁜 걸음을 멈춰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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